언제나 달은 처연한 어둠 속에서 고요히 옅은 빛을 발하며 우리의 외로움을 달래준다. 따라서 잠 못 드는 밤에도 우리는 달빛에 기대어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 음력 초하루 달이 온전히 자취를 감추는 삭을 제외하고 말이다. 이러한 달의 자애로움은 어머니의 그것과 닮았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네 어머니들이 그토록 달을 향해 우리의 행복을 빌었던 것은. 특히 동양에서 그리고 그중에서 우리민족은 달에 많은 의미를 부여해왔다. 달에 붙여진 이름도 ‘열매달’, ‘하늘연달’, ‘미틈달’ 등 많다. 이는 달이 풍요로움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에 살던 인디언들도 달에 ‘검정나비의 달’, ‘작은 밤나무의 달’, ‘사슴이 땅을 파는 달’ 등등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정적이고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이들은 태양보다 달에서 그 가치를 찾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민족이 밝은 날 이 땅에 달을 두고 보고자 하는 욕망이 만들어낸 것이 있다. 바로 ‘달 항아리’다. 보름달을 빼어 닮은 그것은 언제나 그 안에 따스한 에너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고, 만지는 이들에게 그 기운을 전달한다. 달 항아리 앞에서 우리는 비어있으나 비어있지 않고, 가득 차 있으나 역시 차 있지 않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아무 것도 담지 않은 달 항아리는 ‘공(空)’과 함께 ‘기(氣)’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기(氣)‘는 달이 주는 것과 매우 닮아있다. 처연한 어둠 속에서 우리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그 기운 말이다. 고로 수화 김환기는 그 기운을 캔버스에 다시 담고 싶어 달 항아리를 그토록 그리고 또 그렸을 것이다.

이번에 동신대학교 박물관에서 열리게 된 ‘달 항아리’ 전은 대한민국을 대표할 정도로 뛰어난 손재주와 그것을 발현할 수 있는 맑은 기운을 지니고 있는 아홉 명의 도예가들이 내놓은 작품을 보여주고자 한다. 어떤 ‘달 항아리’는 그것 특유의 질료와 형상을 지니고 있지만, 또 다른 ‘달 항아리’들은 그것이 내포하는 개념과 의미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고로 이 전시에서 우리는 기존의 질서와 규칙이 분해되어 새로이 탄생한 ‘달 항아리’들도 함께 목격할 수 있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달은 몇 겁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를 비춰왔다. 그것이 어김없이 지상의 인간들을 내리쬐는 이때. ‘달 항아리’ 전의 작품들과 더불어 그 온화하면서도 자애로운 기운을 만끽한다면, 그 사이 상처 받은 마음들이 큰 위로를 받을 것이다. 이 전시를 통해 관객들에게 이와 같은 사건이 벌어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