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맹꽁이서당' 윤승운 선생 애니메이션 초대전
전시일정: 5월 20일 ~ 6월 20일
전시오픈: 5월 20일 오후3시
전시장소: 동신대학교 중앙도서관 5층 문화박물관 전시실
관람입장: 오전 9시 ~ 오후5시30분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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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서당’ 윤승운선생 초대전

꾸미지 않고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아이디어

윤승운 선생의 만화에서 주인공은 혼자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 주연과 조연이 함께 버디(buddy)를 이룬다. 이들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극을 진행시키는데, 조연 없이 주연 혼자서는 존재하기 힘들다. <두심이 표류기>에서 꼴찌와 꼴방이 형제가 없는 두심이는 상상하기 힘든 존재이며, <요철발명왕>에서 발명왕 요철이는 조수 맹물이가 없으면 존재하기 힘들다. <맹꽁이 서당>에서 훈장님이 있기 위해서는 말썽부리는 학동들이 있어야하고, 말썽부린 학동들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장쇠가 있다. <굼봉이>에서 초능력 소년 굼봉이와 좁쌀이는 주조연을 따지기 힘들만큼 동일한 비중으로 출연한다.

길창덕 선생이나 신문수 선생, 이정문 선생 등 다른 명랑만화 작가의 만화가 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1인 캐릭터에 기대는데 비해 윤승운 선생의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철저히 짝을 이루며 활약한다. 이러한 윤승운 만화의 전통은 1968년 <만화왕국>에 발표한 <꼴찌와 한심이>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꼴찌와 한심이>는 작가에게 어린이를 위한 명랑만화가로 살아가게 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윤승윤 선생이 초등학교 4학년쯤이던 50년대 중반, 추운 겨울 혼자 목욕탕에 간 적이 있었는데, 남자 아이 두 명이 먼저 와 목욕을 하며 심하게 장난을 쳤다. 이때 얼마나 웃으며 두 꼬마가 노는 모습을 보았는지, 나중에 만화를 그릴 때 자연스럽게 그 꼬마 2명의 기억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그 2명이 꼴찌와 한심이로 탄생했다.

이렇게 시작된 인기는 70~80년대 <어깨동무>등에서 연재한 <두심이 표류기>, <요철 발명왕>, <금봉이> 등을 거치며 특정한 상황을 바탕으로 말썽쟁이가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윤승운식 명랑만화로 자리 잡았다. 70~80년대 명랑만화, 특히 신문, 잡지에 연재된 명랑만화는 길창덕, 신문수, 이정문, 박수동, 윤승운의 강력한 4두 마차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이들 작가들은 비슷하지만 각자 뚜렷한 개성을 보여줬는데, 길창덕 선생은 개성이 넘치는 1인 캐릭터와 월례기적 에피소드를, 신문수 선생은 ‘도깨비감투’나 ‘요술항아리’, ‘로봇’과 같은 소도구를 활용한 에피소드를, 이정문 선생은 ‘심술 캐릭터’를 활용한 에피소드를, 박수동 선생은 야구, 학교와 같은 현실적 공간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윤승운 선생은 발명, 탐험과 같은 남자 어린이들이 호기심을 갖는 소재를 주로 활용해 말썽쟁이 콤비의 슬랩스틱을 잘 그려냈다. 만화를 끌어가는 힘의 원천은 가장 어린이다운 천진함, 꾸미지 않고 솟아나오는 아이디어에 있다.

  <맹꽁이 서당>을 통한 작풍의 변화

 
70~80년대, 말썽쟁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윤승운 선생의 만화가 어린이들에게 사랑받은 가장 큰 이유는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가장 자연스럽고 쉽게 그려진 그림에서 느껴지는 동질감, 그리고 말썽쟁이들이 학교를 벗어나는 모험 등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일탈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

80년대에 접어들자 윤승운 선생은 자신의 작품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그 계기가 된 만화가 1982년 창간된 만화 월간잡지 <보물섬>에 연재한 <맹꽁이 서당>이다. 이 작품은 어느 시골마을의 ‘맹공이 서당’을 배경으로 말썽꾸러기 학동들이 때거리로 등장하는 만화다.

학동들의 지상목표는 글공부 하지 않고 노는 것. 늘 그들의 말썽으로 골머리를 썩는 훈장님은 글공부를 싫어하는 학동들에게 조선시대 선대임금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연재 초기에는 12페이지 분량의 한회 연재분에 맹공이 서당 학동들의 말썽으로 시작해 훈장님이 들려주는 선대임금 이야기로 긑을 내는데, 비중는 말썽 부분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맹꽁이 서당>은 저자 윤승운 선생이 작품의 주 독자층인 어린이와 교류되는 동질감 즉, “공부하기 싫고 놀고 싶다”는 어린이들의 슬로건을 포기하지 않고 거기에 ‘역사 이야기’란 학습적 요소를 결합시킨 작품이다. 초기 연재분에는 명랑만화가 역사 이야기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는데, 연재를 거듭하며 주로 조선시대 역사 이야기가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태조에서 시작한 선대 임금의 이야기는 정조 시대까지 이어졌다. 윤승운 선생은 1989년 <보물섬> 연재를 끝난 뒤 본격적인 역사 공부에 매달리기 시작한다. 장기간 연재했던 어린 신문 만화 연재를 끝내고, 성균관 대학의 연구과정에 들어가 한학을 수학한다. 이런 그의 노력은 이후 역사 인물만화, <맹꽁이 서당 고려시대>등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

  박인하(만화평론가, 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의 윤승운 작가론에서 발췌